[차관칼럼] '라떼'와 '갑질'
파이낸셜뉴스 / 2020-04-19
요즘 이른바 '갑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거나 인터넷 등에 노출되면서 대중으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상사가 직원에게 막말을 하거나 폭행하는 것부터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나 술 마시기를 강요하는 행위까지 그 유형도 천차만별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의미하는 '태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우리 사회 전반에 갑질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특히 상사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고, 심지어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접할 때마다 '인사(人事)'를 업으로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TV 프로그램 등에서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말 중에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있다. 흔히 기성세대를 풍자하는 의도로 사용되는 이 말을 듣고 있으면, 어쩌면 이 말이 갑질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젊었을 때 당연스레 여겨지던 일들이 현재 부하 직원의 입장에서는 갑질로 느껴질 수 있다. 시대적 상황과 가치관이 바뀌었으니, '라떼를 말하는 사람들'도 바뀌어야 한다. 상급자는 '정당한 지시'와 '갑질'의 경계에 대해 늘 고민하며 스스로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갑질이 비단 직장 내 개인 간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산하기관에 떠넘기거나, 거래업체에 계약서에도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기존의 불합리한 업무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퇴근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몇 시간을 기다린 민원인에게 내일 다시 오라고 하는 모든 것이 갑질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런 갑질을 없애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첫째는 '원활한 소통'이다. 내가 살아온 시대, 겪어왔던 상황,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혹시 요즘 세대들에게는 '라떼'로 느껴지지는 않을지 항상 반성하고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다음은 '자신의 본분을 아는 것'이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직책과 권한은 유한하며,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내가 해야 할 본래의 '역할과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초심(初心)을 지키는 것'이다. 내가 공직을 시작할 때 스스로 가졌던 다짐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끝까지 해결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잠시 잊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인사혁신처 역시 공직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최근에는 갑질에 대한 징계기준을 만들었으며, '중대갑질 공무원'은 그 명단을 공개하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이것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공직문화를 혁신하는 등 갑질을 뿌리뽑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다.
논어의 '위령공편(衛靈公篇)'에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己所不欲 勿施於人)'는 경구가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갑질을 당하고 싶지 않듯이 나 역시 남들에게 부당한 대우나 요구를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갑질 없는 세상'은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다. '소통, 겸손, 초심'의 자세를 갖고 타인과 함께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바로 이것이 '갑질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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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nnews.com/news/202004191709099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