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피카소의 눈으로 평가하라
매일경제 / 2019-06-18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 4년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까지는 평생이 걸렸다." 입체주의 회화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는 이렇게 회고했다. 피카소의 독창적 화풍인 큐비즘(Cubism), 즉 `입체주의`의 첫 작품인 `아비뇽의 여인들(1907)`에는 조각난 얼굴과 신체의 다섯 여인이 있다. 어떤 여인의 눈은 앞모습이지만 코는 옆에서 본 것처럼 비뚤다.
이처럼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해체한 후 한 화폭에 동시에 그리는 것이 큐비즘의 특징이다. 큐비즘의 위대함은 500년간 서양미술의 철칙이었던 `원근법`을 파괴한 데 있다. 일찍이 라파엘로 같은 옛 거장들의 전통적 회화 기법을 습득해 사실주의 회화에 통달했던 피카소가 왜 원근법을 무너뜨리고 어린아이 같은 화풍으로 그리게 됐을까. 다양한 모습을 가진 대상을 단일 시점에서 그리는 원근법의 불완전함을 밝히고, 입체적으로 보아야 대상의 본질을 알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입체가 평면보다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다. K팝스타의 공연을 360도 영상으로 즐기는 시대에 이를 사진으로만 보는 팬은 없듯 말이다. 입체적인 것이 생생한 감각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힘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성과평가도 마찬가지다. 공직에서의 성과평가는 공무원 개인 실적 및 역량 등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승진 등 인사관리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보통 평가는 상사에 의해 하향식으로 이뤄지는데, 상사의 평면적 관점만으로는 부하의 진면모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옆에서 둘러보고, 스스로 돌아보는 `다면평가`를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다.
다면평가는 2000년대 후반 공직사회에서 여러 부작용을 이유로 활용이 제한됐다. 그러나 최근 다시 인사관리에 다면평가를 반영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업무가 복잡해지면서 동료 간 협업이 핵심 역량이 되고, 갑질 논란으로 관리자의 리더십이 강조되는 시대상이 반영된 결과다. 다면평가의 일부인 `본인평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평가하며 상사가 미처 몰랐던 자신의 성과를 제대로 알리는 등 소통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자신이 그린 비뚤어진 코에 대해 "일부러 그렇게 했다. 사람들이 코를 보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정면이 아닌 옆에서 본 모습의 코에 주목함으로써 다양한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파격적 시도는 서양미술을 원근법에서 해방시킨 회화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인사혁신처는 각 기관이 다면평가의 부작용은 줄이고 장점은 살려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본인평가의 제도적 기반도 마련할 예정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당연히 다면평가도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입체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강조하는 피카소의 정신을 되새겨 다면평가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보다 설득력 있고 수용도 높은 평가에 한 걸음 더 다가가지 않을까.
원문보기 :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06/428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