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사'혁신'처를 '혁신'하다
월간인사관리/3월호
월간인사관리 기고문 - 인사'혁신'처를 '혁신'하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의 인사업무를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많은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흔히 '인사처'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국정 운영, 국익 실현, 국민 행복'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공직사회에서, 인사처는 공직사회를 구성하는 공무원의 인사, 채용, 교육훈련, 복무 등 '사람의 일'을 다루기에 항상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업무를 추진해야 하는 무게감이 있는 조직이다.
'인사혁신처는 '혁신'을 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새로운 인사 제도와 정책을 도입하여 조직을 혁신시키고 유능한 인재를 영입·육성하여 국가의 핵심 인재를 양성하는 등 정부의 인사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공직사회에 유연한 근무 방식을 도입·확산하여 조직문화를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정부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인사혁신처의 중요한 미션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혁신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일이기에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하며, 때로는 실험이 필요하다. 하루하루 급변하는 시대에 민생을 책임지는 정책을 입안·집행하는 공직사회는 어떤 조직보다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공직사회의 일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면 공직사회의 혁신을 주도하는 인사혁신처부터 '혁신'해야 하는 것이다.
"근무혁신, 인사혁신처부터"
"가족 사랑의 날을 없애주세요!"
지난 해 인사혁신처의 일하는 방식, 조직문화를 제대로 한 번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직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어느 저연차 직원이 한 말이다.
'가족 사랑의 날'은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고 정시퇴근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10년부터 각 중앙행정기관이 자율적으로 시행해 오고 있는 제도이다. 인사혁신처도 매주 수요일, 금요일을 '가족 사랑의 날'로 지정하여, 가정에 일찍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개인 취미, 여가 활동 등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운영해 왔다.
지난 10여 년간 중앙행정기관의 초과근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는 조직 문화를 지속적으로 확산시킨 결과, 인사혁신처 직원뿐만 아니라 전체 국가공무원의 초과근무시간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직원 인식 변화 및 유연근무 확산으로 기관 차원의 '가족 사랑의 날'을 계속 운영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것이 건의 내용의 요지였다. 특정한 날이 아닌 상시 '가족 사랑의 날'을 실천한다는 취지에서, 기관 차원의 '가족 사랑의 날'은 그렇게 폐지되었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에 따라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체감하고, 혁신은 한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계속되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 일화였다.
왜 근무를 혁신해야 하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를 보면 2023년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872시간으로 34개국 중 6위이다. 멕시코, 칠레 등이 상위권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선진국 중에서 가장 근로시간이 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시간당 노동생산성(근로시간 대비 국민총소득)을 따지면 미국이 77.9달러인 반면 한국은 44.4달러이다. 오래 일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일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노동집약적 산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이 된 시대에는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이었다. 장시간 근로를 장려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역사 속에 있다.
20세기에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정해진 시간, 장소, 방식에 따라 일률적인 모습으로 일하였다. 하지만 이제 글로벌 일류기업들은 정해진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어떻게 하면 창조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 더 적은 시간을 일하더라도, 효율적인 방식에 따라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일의 가치를 좌우하게 되었다. 근무시간보다 근무의 질이 중요한 시대이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이유로 장시간 근로 관행을 타파하여 근무의 질을 높이고,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생산성 높은 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공직사회에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 제도를 선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국가적 현안인 저출산 위기에 대응하고, 한 사람의 국민이기도 한 공무원 개개인의 삶이 윤택해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민간으로까지 전파될 수 있도록, 일-육아 양립지원을 위한 혁신에 앞장서고 있다.
정부부처 최초 임신공무원 주 1회 재택근무
그간 조직문화를 가정 친화적으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되었다. 육아기 자녀를 둔 공무원이 하루 2시간까지 사용 가능한 육아시간 제도는 대표적인 공무원 육아지원 제도로 자리 잡았다. 모성보호시간, 출산휴가, 가족돌봄휴가 등 임신, 출산, 육아 단계별로 구성된 맞춤형 지원체계는 민간에 앞선 선도적인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적 노력과 함께 인사혁신처는 올해 2월부터 중앙행정기관 최초로 임신 중인 공무원의 주 1회 재택근무를 의무화했다. 8세 이하 자녀를 둔 육아기 공무원도 주 1회 재택근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권장한다. 출퇴근 등이 힘든 시기에 주 1회라도 눈치 보지 않고 재택근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직원의 근무가 자녀 양육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자는 취지이다.
공직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운영 중인 유연근무 제도는 획일적인 근무방식에서 벗어나, 공무원 개개인이 자신에게 더 효율적인 근무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정부는 지난 2011년 공직사회에 유연근무 제도를 도입하고,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선택하는 탄력근무제, 사무실이 아닌 장소에서 근무하는 원격근무제, 근무시간과 장소를 모두 재량에 맡기는 재량근무제의 형태로 구분하여 운영하고 있다.
인사혁신처의 경우, 지난 '24년에 전 직원의 약 87%가 유연근무를 활용하고 있을 정도로 유연근무제 활용도가 높다. 자녀 돌봄, 업무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 필요한 경우 개인이 근무시간과 장소를 자율적으로 설계하여 일할 것을 권장해 온 결과이다. '25년부터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직사회에서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점심시간 단축 근무까지 가능하도록 지침을 개정하였다. 기존에 점심시간을 2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유연근무 제도는 늘어난 점심시간과 함께 퇴근시간도 늦어지는 단점이 있어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앞으로 인사처 직원은 점심시간에 30분을 더 일하고, 대신 30분 조기 퇴근할 수 있는 근무 설계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23년부터 일부 부처에서 희망일의 2일 전까지 신청시 별도로 부서장 승인 없이 유연근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자기 결재' 제도가 시범 운영 중이다. 뿐만 아니라, 인사처에서는 희망일 4일 이전의 연가사용과 육아기 자녀를 둔 공무원의 2시간 범위 내 유연근무 사용 시에도 자기 결재 제도를 활용하도록 조건을 완화하는 등 근무방식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확대하여 생동감 있게 일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다양한 제도를 추진 중이다.
직원에 의한, 직원을 위한 근무 혁신
근무 방식은 자유롭게, 근무시간은 효율적으로, 조직문화는 가정 친화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인사혁신처의 근무혁신 과정에서 최우선 고려 대상은 바로 직원들의 의견이다.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또 듣고, 또 들었다. 내 업무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우리 일터를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서 새롭게, 말 그대로 ‘혁신’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 변화가 공직사회 전체로 퍼져나가는 혁신의 밀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아이디어도 수용하고 검토하였다.
공간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문화를 혁신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 중 하나라는 생각에서, 직원 휴게공간에서의 근무가 가능하도록 업무공간 개념에 대한 혁신도 추진 중이다. 더 나아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방해 없이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근무 공간만 있다면, 휴가지에서 일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워케이션(Work+Vacation)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또한, 근무 방식뿐만 아니라, 연가일수가 적은 저연차 공무원들을 위한 권장연가일수 조정, 기관장과의 소통 확대, 신규직원 적응 지원 프로그램 개선 등 조직문화 혁신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반영하고 시행 중이다.
생동감 넘치는 공직사회 만드는 혁신가이드
인사혁신처의 '근무혁신 지침'은 단순히 직원들의 근무 방법과 규정 등을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지침이 아니다. 비효율적인 근무행태를 개선하면서 유연하고 생산적인 근무환경과 일과 삶의 조화가 가능한 근무방식에 대해, 중앙인사관장기관인 인사혁신처가 공직사회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나가는 ‘혁신 가이드’이다.
앞으로도 인사처는 공직 생산성을 높이고 대국민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다양한 시도를 추진할 것이다. 물론, 각 기관별로 업무 성격과 근무 환경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미래 사회 변화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대비할 수 있는 여러 특성을 고려한 미래 공직사회의 모델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인사혁신처의 공직 혁신 성과가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하고, 더 나아가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생산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근무 환경 조성에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