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평균적 공무원'의 시대는 끝났다
매일경제 / 2020-12-04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나온다. 1940년대 말 미국 공군 조종사들은 전투기 조종에 애를 먹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추락 사고까지 겪었다. 공군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사하던 중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조종석은 조종사들 신체 치수 평균으로 설계됐는데, 조종사 4063명 가운데 10개 항목 전체에서 평균치에 해당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사례를 통해 저자는 말한다. 이제 평균이 아닌 개개인을 중시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우리도 이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고.
공직 인사도 마찬가지다. 평균적인 인간상, 일률적인 가치를 전제로 인사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 공무원 개개인의 가치 지향도 다양화되고 있다. 공직 인사는 이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더 유연해야 하고, 개별화·맞춤형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부터 기관별 특성에 맞는 유연한 인사 운영을 할 수 있도록 '공무원 인사 운영에 관한 특례규정'을 운영 중이다. 기존에는 한 제도가 하나의 모양으로 동시에 적용됐다면, 이제는 다양한 모양을 가진 하나의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각 부처 우수 사례가 본보기가 되고, 점차 확산돼 보편성을 가지면 공통의 표준이 되도록 한 것이다. 일종의 실험을 거치는 것이므로 부작용 우려도 적다.
속도도 관건이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 않더라도 행정 환경은 점점 더 빨리 변하고 있다. 개별화·맞춤화된 조치라도 타이밍을 놓친다면 소용이 없다. 고심 끝에 만든 제도가 법령화되는 순간, 뒷북치는 조치가 되는 그런 시기가 곧 닥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미래 문제를 모두 다루면 좋겠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빨리 변하는 세상, 가치가 다양화된 사회에서 기존의 정책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일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법령과 현실 간 괴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지는 공직 인사가 풀어야 할 과제다. 필자는 사람에게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정부가 최근 적극행정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령이 모호하고 사각지대에 있을 때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선례를 만들어가면 그 간극을 채울 수 있다. 적극행정에 대해서는 포상하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설사 실수가 있더라도 감사나 징계를 면제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제도 만능주의로 흘러서도, 사람의 선의에만 의존해서도 안 된다. 제도와 사람 간 상호 보완 체계 속에서 더 나은 미래가 그려질 수 있다.
인사혁신의 미래를 그리는 또 다른 변수는 학습과 성장이다. 현재와 같이 평균적인 수준에 기반한 대규모 교육 방식으로는 미래를 대비하는 전문성과 역량을 키울 수 없다. 개인마다 역량이 다르고, 필요한 역량은 직무에 따라 달라진다. 인사혁신처가 구축하고 있는 '지능형 인재 개발 플랫폼'은 개인 맞춤형 학습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인간 만사에서는 오랫동안 당연시해왔던 문제들에도 때때로 물음표를 달아볼 필요가 있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이다. 평균의 시대에서 개성의 시대, 맞춤형의 시대로 전환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그런 전환이 일어나도록 끊임없이 의심하고 되돌아봄으로써 기존 틀을 깨려고 노력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올해 출범 6주년을 맞이한 인사혁신처도 그 전환점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 공직 인사도 평균을 외치던 시대와는 작별하고, 개성과 맞춤형의 시대를 마주할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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