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국가유산청 대학생 기자단 2기 이효빈입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수도권 동북쪽의 산사인 ⛰️봉선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수도권에 사시는 분들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도 한적하게 거닐고 싶을 때, 다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은 역사와 자연을 함께 찾고 싶을 때 근처의 국립수목원과 광릉과 함께 엮어서 방문하면 좋을 곳입니다. 봉선사는 천 년이 넘는 내력 그 자체만으로 방문할 가치가 있는 사찰입니다.
☑️️ 봉선사는 고려 광종 20년(969)에 창건된 운악사를 전신으로 하여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사찰입니다. 고려시대에 법인국사 탄문이 운악사를 창건한 이래로 조선시대에는 왕실과의 관계를 토대로 부흥하였죠. 16세기에는 교종본찰로 지정되어 전국의 신도들에게 교학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며 그 격이 높아졌습니다. 대한제국 때에는 경기지역 사찰을 관장하는 중법산(中法山)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 봉선사 창건 공사에 참여한 학열 스님은 한글 창제에 참여한 신미 스님의 수제자입니다. 창건 후 신미, 학열, 학조 스님이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훈민정음의 보급을 위해 불전을 말로 해석하는 일을 도맡았다고 해요. 이 한글 역사 불사 도량의 전통은 근대를 넘어 현대에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아요.
조선 명종 때에는 이곳에서 승과평도 열렸습니다. 사찰 초입에 승과평 비석이 있어 승과를 치르는 예비 승려들의 모습을 상상(?) 해 보기도 했어요. 역시 유적을 방문할 때는 당대로 돌아가는 상상력이 필요하죠!
⚒️ 봉선사는 억불 정책과 전쟁 등으로 여러 건물이 수차례 재건되었습니다.
1551년 교종의 수사찰(首寺刹)로 지정되었지만 임진왜란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국가의 원조로 복구하였으나, 또다시 병자호란이 일어나 소실되었습니다. 이를 1637년에 주지 계민 스님이 중창하고, 1749년에 재점 스님이 중수하여 대찰로 거듭났습니다.
☑️ 근대에는 월초 거연(月初巨淵)과 운허 용하(耘虛龍夏)가 교종본찰로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월초는 일제강점기 토지 사유화를 막기 위해 노력했고, 원흥사 터에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명진학교를 세워 승려 교육에 이바지하였습니다. 1920년대 후반에는 봉선사 주지로서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수하고 삼성각을 신축하도록 하였습니다.
🍃 이런 변화 속에서도 수령이 500년이나 된 느티나무가 사찰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데요, 여러 화마 속에서도 살아남은 나무라니,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스레 체감하였습니다.
✔️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는 칠성 신앙을 표현한 불화입니다. 화기(畵記)에 따르면 칠성도는 1903년(고종 40)에 본래 원흥사에 봉안되었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 중앙에 치성광부처님의 뒤에 반짝반짝 빛나는 원! 바로 광배인데요🌟, 신광(神光)이 금박으로 되어 신비스러운 느낌을 더해줍니다. 이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배치하고, 그 주변에 칠성을 상징하는 일곱 명의 부처를 배치하였습니다.
상단 색구름 속에도 부처가 있는데요, 이들은 별자리를 상징하는 ✨삼태육성(三台六星)✨입니다.
칠성도는 삼성각 내부의 중앙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삼성각으로 들어가니 광배를 뒤로한 부처를 바로 마주하게 되어 절로 엄숙해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