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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한국에 돌아온 관월당, 조각조각 보여드립니다
2025-10-29
기관분류중앙행정기관 기관명국가유산청 작성자문경규 조회수10
작성자문경규
작성일2025-10-29
조회수10

한국에 돌아온 관월당,

조각조각 보여드립니다

<관월당 해체 부재 언론공개회>

2025. 07. 23.

안녕하세요. 2기 국가유산청 대학생기자단 이효빈입니다.

2025년 7월 23일, 파주 소재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에서 관월당 해체 부재 언론공개회가 열렸습니다.

관월당(観月堂)조선시대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는 건축물로, 최근까지 일본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지난 6월 23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관월당의 소장자인 일본 고덕원과 약정을 체결하였고, 고덕원이 보존 · 복원을 위해 해체하고 한국에 이송한 관월당 부재를 정식으로 양도받아 이를 6월 24일 언론에 공개한 바 있습니다.
 

 관월당(観月堂)조선시대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는 건축물로, 최근까지 일본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지난 6월 23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관월당의 소장자인 일본 고덕원과 약정을 체결하였고, 고덕원이 보존 · 복원을 위해 해체하고 한국에 이송한 관월당 부재를 정식으로 양도받아 이를 6월 24일 언론에 공개한 바 있습니다.

🎤 환수 소식을 전한 6월 언론공개회에 이어 이번에 진행된 언론공개회는 관월당의 해체 부재를 공개하고, 수장고 보관 현황을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환수 이후에 진행된 연구 상황과, 앞으로의 복원 및 복제 계획 등에 관해 상황을 공유하고 의견을 주고받고자 마련되었습니다.

번 언론공개회는 지난 7월 17일에 취임한 신임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언론과 공식적으로 첫 대면하는 자리였습니다. 청장님께서는 인사와 함께 관월당 조사의 현 상황을 언급해 주셨습니다.

✔️ 사실 '관월당(観月堂)'으로 알려진 현재의 이름은 원래 이름이 아닙니다. 일본에 있을 때 불리던 이름으로, 한국 명칭을 되찾아 부르기 위해서는 옛 문헌을 토대로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남아있는 문헌 자체가 부족하여 명칭뿐만 아니라 관월당이 있었던 원위치를 밝히는 것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청장님께서는 국외 소재 문화유산의 반환의 중요성에 관해 역설하셨습니다. 국가유산청 측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국외로 반출된 유물이 약 24만 7천 점입니다. 그중에서 국내로 환수된 문화유산은 약 5% 정도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청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국외 소재 문화유산의 경우 국제법 상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환수 조치에 어려움이 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 상황을 브리핑하며 청장님께서는 "국외 대사관들과 협조하여 불법으로 가져간 유산들은 반드시 환수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협약에 따라 기증을 받는 방식으로 문화유산을 환수하고, 국가유산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국가유산을 보존하여 후손에게 넘길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포부를 밝히셨습니다.

 

관월당의 환수와 해체 부재의 구성

박소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직원

본격적으로 박소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직원이 관월당의 환수와 해체 부재의 구성 등에 관해 브리핑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관월당의 해체 부재기와의 현재 상태에 관해 알 수 있었습니다.

✅ 관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조선 후기 왕실 사당 양식을 지닌 목조 건축물로, 맞배지붕 단층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요. 더 자세하게는 아래층부터 기단, 기둥, 기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단을 구성하는 부재는 지난해(2024년) 1월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기둥으로부터 골조를 이루는 목재는 올해(2025년) 5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언론공개회에서 마주한 관월당의 기와는 포장된 채로 일본에서 들여온 상태 그대로 보관되고 있었습니다. 각각의 기와는 비닐로 감싸 두었습니다.

목재는 위의 사진들처럼 파레트에 묶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파레트 랙(선반)은 한 단에 최대 1톤 정도를 보관할 수 있는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측에서는 안전성을 고려하여 하단에는 크고 무거운 목재를, 상단에는 비교적 작고 가벼운 목재를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목재를 살펴보니 종이나 비닐이 붙어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종보'는 종이를 감싼 채로 보관되고 있는데요. 이는 관월당을 해체하고 부재를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표면의 단청면이 당락될 것을 우려해 해체 이전에 보호 처리를 해둔 것입니다. 보 머리처럼 외부에 장시간 노출된 부재들은 그 표면이 바스러지는 모습을 보여, 재단 측에서 비닐을 쌓은 그대로 두고 아직 포장을 풀지 않았습니다.

이 종이와 비닐은 추후에 부재 조사를 시작하며 모두 제거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관월당 부재 수량과 보관 현황

 


다음으로는 관월당 부재의 수량과 보관 현황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수장고에 있는 부재들에 관해 설명하면서 각각의 부재를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파레트의 위치도 짚어주셔서 생생함을 느끼며 들을 수 있었습니다.

♣ 기둥과 구조

기둥

단면이 방형(方形; 사각형)

12개(기본)+2개(양측면에 얇은 기둥 추가)

구조

정면 3칸, 측면 2칸

-

기둥의 형태와 건물의 구조는 위의 표를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건물을 이루는 평주의 높이는 2.4m인데, 이 평주보다 50cm 정도 더 높은 고주가 관월당 내부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또 각각의 기둥은 위치별로 하단에 동판이 설치되었거나 붙임 기둥이 추가되는 등 그 특징이 달랐다고 합니다.

* 평주(平柱, 평기둥): 크기나 모양이 같게 건물 외각에 세워진 기둥.

* 동판(銅板): 구리로 만든 판.

✨ 주목할 점은 붙임 기둥이 일본에서 추가되었다는 점입니다. 기둥 표면에 흑색 칠이 되어 있었는데, 평주로부터 기둥을 떼어내 보니 평주 상부에 주칠(붉은색 단청칠)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관월당의 기둥에 원형과 변형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 보와 도리

📍는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을 건너질러 도리와는 ‘ㄴ’ 자 모양, 마룻대와는 ‘十’ 자 모양을 이루는 나무이며, 📍도리는 서까래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를 의미합니다.

관월당은 대량, 툇보, 공포, 다포가 보 부재로 사용되었습니다. 관월당 전면에는 틀을 설치하고, 내부에 서있는 보주(보柱) 전면에 툇보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배면에는 가장 큰 대량을 설치하고, 대량의 상단에는 공포가 올라갔습니다. 외부에서 보이는 관월당 양쪽에는 다포가 서로 마주 보도록 설치하였습니다.

* 대량(大樑): 작은 들보의 하중을 받기 위하여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른 큰 들보.

* 툇보(退보): 툇기둥과 안기둥에 얹는 짧은 보.

* 공포(栱包/貢包):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 다포(多包): 기둥머리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에 짜 올린 공포(栱包).

♣ 관월당 정면과 배면

한편 관월당의 정면과 배면 간에는 장식성이나 그 급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로, 정면 보 머리에는 조각이 되어 있었는데, 배면에는 그런 조각이 없이 90도로 잘라낸 형태로 가공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기둥 상부에 결부하는 창방은 정면에 설치되고 배면에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셋째로, 창방과 결부되는 공포 구조인 '기풍'이 정면에는 있지만 배면에는 없습니다. 넷째로, 지붕의 경우 정면이 겹처마, 배면은 후처마입니다. 즉, 전면에 배면보다 화려한 양식을 사용하였습니다. 다섯째로, 정면에는 단면이 원형인 굴도리를, 배면에는 방형인 납도리를 설치하였습니다. 목재를 치목할 때 원형이 방형보다 품이 많이 들어가므로 굴도리가 납도리보다 급이 높은 것이죠!

* 창방: 기둥과 기둥의 위에 가로질러 화반이나 공포 따위를 받치는 굵은 나무.

* 겹처마: 연목 상부에 구연을 덧대어 지붕을 길게 내뜬 양식.

* 후처마: 연목만을 설치하여 간략하게 만든 지붕 양식.

<관월당 정면과 배면 비교>

 

정면

배면

보 머리 조각

O

X

창방

O

X

기풍

O

X

지붕

겹처마

후처마

도리

굴도리

납도리

 

📍 목조 건물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 혹은 문이나 창의 아래나 위로 가로지르는 나무를 인방이라고 합니다. 관월당의 '하인방'은 다른 목조 건축과 사뭇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목조 건축에서 기둥이 세워져 있으면 그것을 가로지르는 상인방, 중인방, 하인방이 있습니다. 보통 인방은 각 칸의 길이에 맞게 설치를 하는데, 관월당의 배면 하인방의 경우 세 인방이 세 칸을 관통하도록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길이는 7.2m에 달하여 수장고 맨 뒤쪽 하단에 보관 중입니다.

♣ 기와와 초엽

1) 기와지붕

관월당의 기와지붕은 일본식으로 변형되어 있습니다. 통상 내부에 '보토'라는 흙을 깔고 기와를 놓는데, 관월당은 추가로 얇은 부재를 달아서 덧지붕 구조를 이루었습니다. 구성하는 연목 부재가 얇아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파레트 상단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2) 초엽

📍초엽(蕉葉/草葉)은 규모가 큰 지붕의 측면(기둥이나 초벽)에 단여(短欐)ㆍ선반 따위를 달 때 밑에 받친, 구름무늬가 새겨진 길쭉한 세모꼴의 널빤지 형태의 나무입니다. 표면에는 장초 조각이 되어 있고, 일정 간격으로 설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봤을 때 외관적 화려함을 주는 기능을 합니다. 보통 궁궐 건축에서 발견되는데, 관월당에서는 10개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초엽을 통해 관월당과 왕실 건축의 연관성을 규명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3) 기와

관월당의 기와는 암키와, 수키와, 암막새 세 종류입니다. 암막새는 암키와 열의 끝(지붕의 처마)에 설치하는 마감 부재로, 관월당은 용문, 귀문, 거미문, 나비문 등으로 드림새에 찍힌 문양이 다양합니다.

* 드림새: 막새에서 둥글게 노출된 부분.

위 사진에서 트레이 상단에 있는 암막새는 조선에서, 하단에 있는 암막새들은 일본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향후 기와의 강도와 흡수율 등을 확인하여 한일 양국의 기와의 특성 및 제작 기법을 비교 연구해 볼 계획이라고 합니다.

특히 관월당이 일본에 넘어간 후에 한국에서 사용하던 기와를 모방하여 새로 기와를 제작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데요. 복잡한 용문을 그대로 따라 만들었지만, 기와의 색상이나 디테일적인 측면이 약간 다르다고 합니다. 실제로 조선의 기와가 더 밝고, 일본의 기와가 더 어두운 모습이었습니다.
❓관월당의 건축 시기를 알려면 목재가 언제의 것인지 알아야 할 텐데, 그렇다면 목재가 만들어진 시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 기둥이나 도리처럼 단면의 규격이 큰 부재들은 나이테의 개수나 폭을 통해 목재의 벌채 시기를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연륜연대(年輪年代) 분석과 수종(樹種) 분석을 통해 관월당의 연혁을 보강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관월당의 건축과 연혁

이규철 건축공간연구원 박사

이어진 이규철 건축공간연구원 박사님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건축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관월당이 일본으로 어떻게 넘어갔는지에 관한 기록은 확인이 되지 않았으며, 일본인 금융업자 후세이를 통해서 넘어간 것만 확인되었습니다. 일본의 기록을 바탕으로, 1920년대 경에 일본 도쿄로 한 번 넘어간 이후에 다시 가마쿠라 지역으로 넘어가서 관월당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러 기록을 조합해 보면 국내에 있을 때에는 왕실 관련 건물로서 당초 서울 지역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야마이치 증권의 초대 사장인 스기노 기세이(杉野喜精, 1870~1939)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규철 박사님은 관월당이 조선 왕실의 사당으로 추정되는 근거를 더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 관월당은 기본적인 골격의 형태가 전형적인 사당의 형식을 띠고 있어 거의 사당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편 왕실과의 관계는 건축에서 발견되는 신분 특징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데, 초엽, 화려한 단청 장식 등을 근거로 조선 왕실과의 관련성을 추정한다고 합니다.

✏️ 관월당이 한국 연구자들에게 알려졌던 1980~90년대에는 경복궁에 있는 원단(圜壇)일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연원 연구 결과 정확히 경복궁에 있던 것은 아니고 궁궐 내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수준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실제로 1908년 당시의 경복궁 도면을 확인했는데 관월당과 비슷한 건물은 확인되지 않을뿐더러, 명확한 독립 건물의 사당이 궁궐 내에 있기는 쉽지 않아 경복궁 인근에 자리한 궁가(宮家)의 사당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 왕실과 관련한 칠궁의 5개 사당과 비교하여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칠궁보다는 그 규모가 조금 작으므로 후궁의 사당보다는 작은 대군 급의 사당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확실한 규명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 원단(圜壇): 고려 시대부터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은 단.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연구 복원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어, 그 사이에 국민에게 연구 진행 상황을 공유할 필요성이 크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공개 방식에 대한 논의도 빠른 시일 안에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단청 분석은 올해 안에 상세히 할 예정이며, 연륜연대(年輪年代) 조사 및 수종(樹種) 조사를 실시할 계획입니다.

전통 기와 등 옛것을 복원하는 과정의 중요성과 열린 행정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청장님의 발언을 끝으로 관월당 부재가 보관된 1수장고에서의 시간은 마무리되었습니다.